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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라 요시카게는 언제 어느 때든 조용히 살고 싶다.

 

 평온함을 바라는 성격은 살인귀라는 정체를 들켜 얼굴과 신분을 바꾸고 숨어 사는 현재에도 마찬가지였다. 조용한 일요일 아침, 버릇처럼 7시에 일어나 브런치를 준비한 그는 카와지리 시노부와 함께 자리에 앉아 그의 배우자인 카와지리 코사쿠를 연기했다. 비록 당신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걸 처음 본다는 그녀의 말에 당황하여 흘린 식은땀으로 잠옷이 축축해졌지만 크게 문제는 되지 않는다. 이 정도 트러블은 웃으며 넘길 수 있을 정도로 키라의 정신력은 강해져 있었다.

 

 평소 자신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하야토는 캠프인지 뭔지를 가버렸고 오늘 점심에나 올 예정이었고, 시노부는 영문을 모르겠으나 자신에게 꽤 호의적인 시선을 보냈기에 자잘한 실수 정도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키라는 직접 내린 커피를 마시며 오랜만에 평온을 만끽했다. 며칠간 너무 많은 일이 있었고,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보장된 평온은 사막에서 발견한 오아시스처럼 무척 소중하게 느껴졌다. 부디 이 평온이 오래 이어지길. 키라는 진심으로 그렇게 빌었다.

 

  "그러고 보니 당신, 요새 '그 일'은 괜찮은 거야?"

  "……그 일, 이라면?"

 

 평온을 바란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이래서 말이 많은 여자는 싫다고 생각하며 키라는 주변을 살폈다. 거실에 자신과 시노부 뿐이라는 걸 재차 확인하자 작게 한숨이 나왔다. 원래부터 조심하긴 했으나, 결벽적일 만큼 주변을 살피는 건 최근 사사건건 자신을 감시하는 하야토 때문에 생긴 버릇이었다.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당신 부탁대로 하야토에겐 입도 뻥긋하지 않았으니까."

  "그, 그렇구나… 고마워……."

 

 무엇을 오해한 건지 시노부는 눈을 빛내며 자신의 배우자로 착각 중인 키라에게 단언했다. 그렇게 간섭이 심한 딸에게도 숨기고 부부끼리만 알고 있는 비밀이란 게 대체 뭔데. 카와지리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죽은 사람은 말이 없는 법이었다. 경련할 것 같은 입꼬리를 머그잔으로 가리며, 키라는 진정하기 위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요새 신경 쓸 일이 많아져서 혼자서 해결한다고는 했는데, 혹시 신경 쓰이게 했다면 미안해."

  "무슨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어쩐지 요새 밤에 바로 자버리는 게 피곤해 보인다 싶었어…. 당신은 늘 혼자 하려고 하는 게 문제야. 조금은 나에게 털어놔도 되잖아."

 

 우리는 부부인데. 어지간히 섭섭했는지 시노부는 작게 볼을 부풀리며 중얼거렸다. 카와지리가 살아서 이 광경을 봤다면 새삼 가슴이 두근거릴 만큼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다만 그 광경을 보는 키라는 그녀의 배우자도 아니었으며, 안 그래도 밤마다 권유에 시달려 진땀을 빼던 참이었기에 그저 초췌해진 채로 애매하게 웃을 뿐이었다.

 

  "알았어…. 그래서 그 일이라면 정확하게 무슨 일인지……?"

 

 미안한데 내가 요즘 너무 일이 많다보니 네가 말하는 게 어떤 일인지 몰라서 물어본다. 키라는 최대한 이 뜻이 전해지길 바라며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다행히 시노부는 친구에게 비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꺄르르 웃으며 작게 속삭였다.

 

  "당신, 마법소녀잖아?"

 

 그 한마디는 키라의 평온함을 깨뜨리기 충분한 파괴력이었다.

 

 

 

 

 

 키라 요시카게는 자신이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다. 비록 이런 꼴이 되었더라도 자신은 행복해질 권리가 있으며, 이 이상 이보다 자신에게 너무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조금 전까지는.

 

 마법소녀. 마법소녀란 무엇인가. 보통 마법의 힘으로 변신해서 싸우는 여자아이를 마법소녀라고 하는 것 같다. 어릴 때 여자아이들이 동경하는 가상의 존재. 서브컬쳐에 관심이 없는 키라에게 마법소녀란 그 정도의 이미지였다. 그런데 이 단어가 왜 지금 나온 거지? 마법소녀? 정말 봐줘서 스탠드 같은 존재가 있는 세상이니 마법도 어쩌면 정말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럼 마법은 그렇다고 쳐도 소녀라니?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카와지리도 신분증을 확인했을 때 확실히 30대 초 중년 여성이었다. 자신도 오래 산 건 아니었으나, 적어도 33년 살면서 키가 160이 넘고 슬슬 얼굴에 주름이 생기는 소녀는 스탠드로도 본 적이 없었다. 혹시 자신도 모르게 일본 법상 소녀의 기준이 바뀐 건가? 국민에게 아무 말도 없이 이렇게 법을 바꿔도 되는 건가? 자신의 조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건가. 그럼 이 집구석은 마법소녀라는 배우자에게 저녁에 컵라면 하나 주고 말았다는 건가.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직장 상사에게 굽신거리는 마법소녀라는 게 세상에 존재해도 되는 건가. 이딴 마법소녀가 존재하는 세상이란 대체 어떻게 되먹은 건가.

 

  "…당신 괜찮아?"

 

 시노부의 목소리는 키라를 상념에서 끄집어내기 충분했다. 정신을 차리니 말이 없어진 배우자에 시노부가 불안해진 건지 이쪽을 걱정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전혀 안 괜찮아. 무심코 튀어나오려는 말을 애써 삼키며 키라는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걸… 생각해주고 있을 줄은 몰랐어. 믿어주고 있었구나. ……마법소녀라는 걸."

  "물론이지. 내가 당신에 대해 얼마나 잘 아는데."

 

 그렇게 말하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는 시노부에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배우자가 바뀐 지도 모르는 주제에 잘도 말하고 있구나…. 하지만 이런 비아냥은 키라의 평온한 삶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선 현재 상황을 넘기고 그 '마법소녀'라는 것에 대해 알아내는 게 우선이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그렇게 따지자면 신분을 버리고 얼굴을 바꿔 숨어 사는 자신도 상식적이지 않은 존재인 건 마찬가지였다. 평온함을 쟁취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해낼 각오는 되어있다. 키라는 이번 일에도 진심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믿어줘서 고마워….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서 따로 말은 안 했어. 이제부터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말할게."

  "정말이지? 이번에도 말로만 하지 말고 꼭 그렇게 해줘야 해?"

 

 약속이야! 새끼손가락을 내미는 그녀에게 키라는 어울려주기로 했다. 지금 가장 문제는 너인데.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하는 와중에도 속마음은 말하지 않았다. 이 이상 커다란 문제는 없어야 하며, 있더라도 그녀에게 말할 일은 영원히 없을 것이었다.

 

 카와지리 코사쿠는 이번에도 카와지리 시노부에게 말을 하지 않았다.

───

 

  “대체 그 마법소녀라는 게 뭐야…!”

 

 아침의 티타임을 끝낸 후 잽싸게 다락방으로 올라온 지 3시간째, 키라는 몇 번째인지 모를 신경질을 냈다. 카와지리의 소지품이라면 이 집에 숨어들었을 때 다 정리했었으나 안타깝게도 그중에서 마법소녀에 관해선 흔적조차 발견한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마지막으로 남은 다락방으로 올라왔지만 그다지 생활력 없는 두 여성이 아무렇게나 쌓아둔 물건 속에서 예의 ‘마법소녀’스러운 물건을 찾기란 모리오초에서 얼굴을 바꾼 키라 요시카게를 찾기만큼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물론 자신은 절대 잡히지 않을 거지만, 지금 찾는 무언가가 보이지 않는 건 정말로 곤란하다. 몇 년간 쌓인 먼지를 털어내던 키라는 속으로 이미 죽은 카와지리와 자신을 이 상황으로 몰아넣은 히가시카타 죠스케와 쿠죠 죠타로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그녀’를 구하기 위한 살인을 할 수 없는 현재 키라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었다.

 

 부친인 키라 요시히로가 용케 자신을 찾아왔기에 둘이서 찾으면 좀 더 수월했겠지만, 도저히 이 일에 생물학적 아버지를 끌어들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신경 쓰이니까 혼자 있게 해달라던가, 더는 아버지가 참견할 나이가 아니라던가, 애초에 이 합작은 메일 바디 반입금지니까! 마지막엔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말을 꺼내 가며 자신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요시히로를 겨우 쫓아냈다. 물론 애써 쫓아낸 그는 저녁엔 돌아올 예정이었으며 자신도 내일이면 출근을 해야 하는 몸으로 기회는 지금뿐이었다.

어떻게든 이 시간에 찾아내야 한다는 초조함 속에서 키라는 분주히 다락방을 뒤졌다. 슬슬 하야토의 흔적도 다 정리되고 결혼 초 신혼부부의 물건을 정리할 즈음. 카와지리의 짐 상자를 꺼내보던 키라의 손이 멈췄다.

 

  “이… 이건…….”

 

 키라를 맞이한 건 평범한 직장인의 물품 속에서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마법봉이었다.

 백화점에서 일하던 키라에게 마법봉 자체는 익숙한 장난감이었다. 다만 키라가 알던 그것은 장난감 코너에서 핑크색 패키지 속에 담겨 반짝반짝 빛나는 플라스틱 장난감이었지, 정장과 사무용품이 담긴 상자 안에서 심상찮은 존재감을 드러내는 무언가가 아니었다. 하야토에게 주려던 장난감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으나 몇 시간에 걸쳐 하야토의 짐을 정리한 결과 카와지리 하야토는 보통 여자아이와는 거리가 먼 취향을 갖고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크기도 아동용이 아닌 성인용에 맞춰져 있어 누가 봐도 이 마법봉은 카와지리 코사쿠의 물품이 맞았다. 드디어 원하던 물건을 찾았건만, 기쁨보단 당황이 앞서 말문이 막혔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마법소녀스러운 물건이면 오히려 손대기가 껄끄러워진다.

 

 무작정 찾긴 했으나, 사실 키라는 마법소녀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없었다. 또래 아이들과 깊은 교우 관계를 가진 적도 없었으며, 통제가 심한 어머니 밑에서 흔한 애니메이션 하나 제대로 보지 못했다. 요시카게는 착한 아이니까, 엄마가 하는 말을 들을 거지? 텔레비전을 끄면서 항상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키라도 애니메이션에 관심은 없었기에 보지 못해도 문제는 없었다. 다만 그녀의 그 말은 시간이 흘러도 그림자처럼 늘 키라를 따라다녔다.

 

  “윽….”

 

 갑작스러운 통증에 인상이 절로 찡그려진다. 시선을 내리자 살이 뜯겨나간 자리에 피가 한 방울 맺혀있었다. 상처를 보고 나서야 키라는 무심코 자신이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과거, 특히 어머니를 생각하면 이렇게 되기 십상이었다. 청소용으로 가져온 물티슈로 대충 상처를 누르며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쉬었다.

 정신 차리자, 키라 요시카게. 지금은 과거를 회상하며 감상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었다. 현재 자신은 죠스케와 그 패거리에게 쫓기고 있으며, 열심히 지켜온 평온을 위협받는 중이었다. 얼굴까지 버려가며 겨우 신분을 얻었건만 이런 바보 같은 일 때문에 정체를 들키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완벽하게 카와지리 코사쿠로 위장하기 위해선 마법소녀든 무엇이든 해내야 했다. 자신은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살아남고 말 것이다. 키라는 결의를 굳히고 마법봉을 들었다.

 

  “그건 그렇고 이건 어떻게 하는 거지… 그냥 휘두르면 되나?”

 

 마법봉을 들어 올리니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장난감 같은 외형치고 꽤 무게감이 있었다. 조심스레 휘둘러보아도 허공을 가르는 소리만 날 뿐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역시 무언가 주문이라도 외쳐야 하는 걸까. 장난감 코너 담당 직원이 항상 무언가를 중얼거리던 기억이 났지만, 관심이 없었기에 세세한 부분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 이렇게 하면 되나? 변신…!”

 

 관련 지식이 있는 누군가 있었다면 ‘그 구호는 저작권이 있어서 함부로 쓰면 안 돼요.’라고 알려줬겠지만, 이 다락방엔 키라 뿐이었다. 아무도 없는데도 괜한 부끄러움에 눈을 질끈 감고 되는대로 외치자 그녀의 용기에 반응하듯 마법봉이 빛났다.

 

  “우… 으아아아악!”

 

 마법봉에서 나온 빛이 그대로 키라를 감싼다. 샤랄라하는 효과와 함께 무언가의 뱅크씬이 시작됐지만, 처음으로 변신하는 키라는 그것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이게 뭐야? 뭐 하는 건데?! 이건 왜 이러는 거야?! 일반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할법한 지극히 평범한 질문이었으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어쩌면 마법소녀는 혼자 불합리한 시스템을 감당해내는 고독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무언가 엄청나게 부끄러운 노출씬 이후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처음 보는 옷을 입고 처음 보는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이 포즈도 마법의 일부분일까. 문득 의문이 들었으나 어차피 대답이 없을 테니 굳이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어느샌가 장갑을 끼고 있는 자신의 손을 어색하게 보던 키라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보았다. 여전히 먼지가 쌓이고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어두침침한 다락방이었으나 숲 속에라도 온 것처럼 조금 전과 달리 매우 상쾌한 기분이었다. 살인을 저지른 뒤의 상쾌함보단 처음 스탠드를 각성하고 능력을 쓸 때 느꼈던 고양감에 가까웠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단순히 옷만 바뀌는 코스튬 플레이는 아닌 모양이었다. 잠시 망설이던 키라는 시노부의 짐 속에서 미리 빼둔 손거울을 들고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이게 뭐야…….”

 

 자신의 얼굴을 보자마자 당황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거울 속 카와지리 코사쿠의 얼굴은 여전히 30대 초 여성의 얼굴이었다. 분명 마법소녀라고 하지 않았나? 변신하면 자동으로 소녀로 바뀌어야 하는 게 아닌가? 백화점에서도 나이 30 먹은 직원한테 이런 복장은 안 시키는데, 이건 무슨 수치플레이란 말인가. 이유 없이 짧은 치마와 복부 노출도 버티기 어려운데 심지어 옷 사이즈마저 카와지리 코사쿠에 맞춰져 있는지 키라에겐 미묘하게 컸다. 특히 평소 사이즈 차이로 패드를 넣고 다니던 가슴 부분은 변신하면서 패드가 사라져버려서 가만히 있어도 신경이 쓰일 정도로 헐렁했다. 마법소녀는 패드도 금지인가. 대체 마법소녀란 무엇인가. 키라가 다시 한 번 마법소녀라는 존재에 대한 철학적인 생각에 빠져들 때 즈음, 돌연 마법봉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새로운 마스코트를 등록하시겠습니까?]

 

  “마스코트…?”

 키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도 궁금하긴 했으나 사무적인 말투이니 일종의 시스템으로 이해하자. 다만 마스코트는 낯선 개념이었다. 물론 마법봉과 함께 귀여운 소동물을 닮은 봉제 인형도 같이 팔린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정확히 그게 무슨 역할을 하는지 키라는 전혀 몰랐다. 외형만 봤을 때 전투 능력은 있어 보이지 않는데 자신의 아버지처럼 보조역할을 하는 걸까. 그렇다면 마법소녀에 대해 지식이 없는 자신에겐 더없이 필요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혹시 문제가 생기더라도 킬러퀸으로 없애버리면 그만이었다. 마법소녀가 하기엔 꽤 난폭한 생각을 하며 키라는 마스코트를 등록하기로 마음먹었다.

 

  “좋아, 새로 등록하겠어.”

  [감사합니다. 새로운 마스코트를 불러오는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다시 빛나기 시작한 마법봉을 바라보는 키라의 눈빛은 불안했다. 마스코트가 이전의 카와지리 코사쿠를 알고 있으면 어떻게 해야지? 되도록 정체를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지만, 마법과 관련된 존재라면 거짓말이 단번에 들킬 가능성도 있었다. 킬러퀸처럼 완벽히 자신을 따르는 존재라면 좋겠지만 세상은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 법이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스탠드를 구현시키려던 찰나, 자신과 비슷하지만 매우 높은 톤의 깜찍한 목소리가 들렸다.

  “코사쿠! 정말 오랜만이네!”

 아무래도 자신이 카와지리 행세를 하고 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싶었다. 집중력이 흐트러진 탓인지 스탠드가 나오지 않아 불쾌감을 느꼈지만, 혀를 차는 것 외엔 티를 내지는 않았다. 부러 의심을 사고 싶지 않은 게 키라의 본심이었다. 대체 얼마나 귀엽게 생겼는지 한번 봐볼까. 스탠드라면 나중에 필요할 때 부르면 되는 일이었다. 키라는 마법봉에서 나온 빛이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자 팔짱을 끼고 그 광경을 살폈다. 봉제인형 사이즈로 줄어든 빛은 열심히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사이즈부터 작고 귀여워서 그런지 꽤 사랑스러운 모습의 마스코트일 거란 예감이 들었다. 그런데 이 실루엣…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하며 기억을 뒤적이던 키라의 눈이 순간 크게 뜨였다.

 

  "마, 말도 안 돼…!"

 

 연한 분홍빛 몸체에 달린 통통한 팔다리는 자신의 몸을 다 껴안지 못할 정도로 작고 실로 앙증맞았다. 조금 각진 얼굴엔 양쪽에 작은 삼각형 모양의 귀가 달려있고, 날카로운 눈은 사냥감을 찾는 고양잇과의 눈빛이었으나 컬트적인 귀여움이 있었다.

 키라는 마스코트에 대해 잘 모른다. 하지만 눈앞의 이 존재만큼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마법소녀 카와지리 코사쿠의 새로운 마스코트는 목에 커다란 리본을 단 ……킬러퀸이었다.

 

  "이건 또 뭐야!"

  "새로 등록된 마스코트의 모습이야~! 어때? 귀엽지 않아? 난 정말 맘에 들어. 시밧."

 

 경악하는 키라를 두고 마스코트는 태평하게 공중을 한 바퀴 빙글 돌더니 엣헴, 하고 가슴을 펴고 있었다. 확실히 공중을 둥둥 떠다니는 마스코트는 겉모습은 고양이를 닮은 앙증맞은 봉제인형과도 같았다. 그게 자신의 스탠드의 모습만 아니었다면 키라도 귀여워했을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랴. 키라는 아까 전부터 스탠드를 호출하기 위해 마음속으로 그 어떤 때보다 간절히 킬러퀸을 불렀지만 야속하게도 그의 스탠드는 기척조차 내지 않고 있었다. 아까 스탠드를 부르지 못한 것도 단순히 집중력이 흐트러진 탓이 아닐지도 모른다. 키라는 눈앞의 마스코트를 노려봤다.

  “너… 나와 내 스탠드에 무슨 짓을 한 거지? 네가 나온 후부터 킬러퀸을 부를 수 없게 됐어.”

  “스탠드?”

 천연덕스럽게 고개를 갸웃하는 모습 또한 사랑스럽다. 과연, 이 정도로 귀여워야 상품으로 팔릴 수 있는 건가. 화가 난 와중에도 머리 한구석에서 그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다. 귀여운 모습으로 적개심을 누그러뜨리고 호감을 사는 게 목적이라면 달성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키라에겐 그게 자신의 스탠드의 모습인 게 문제였지만.

 

  “스탠드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법소녀는 변신 중엔 순수하게 마법소녀로서의 힘만 쓸 수 있으니까 그런 게 아닐까? 시밧?”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어! 그리고 비효율적이지 않아? 가능한 모든 수단을 쓰는 게 더 좋을 텐데.”

  “어쩔 수 없지~. 마법소녀 간의 불평등한 격차를 줄이고 형평성을 유지해달라고 요구하는 노조와 협상한 결과가 현재 시스템이니까. 시밧.”

  “노조…….”

 

 그런 귀여운 모습으로 사회인 같은 단어를 쓰는 건 부디 지양해주었으면 한다. 직업병처럼 어린이들의 환상이 깨지고 부모로부터 컴플레인이 들어오는 모습이 상상이 되어 키라는 몸을 떨었다.

 그래, 진정하자. 단순히 마법소녀의 시스템 때문에 스탠드를 부를 수 없다면 정체를 들켰을 때 조금 곤란해지긴 해도 변신을 풀고 없애면 되니 큰 문제는 없으리라 판단된다. 다른 능력도 봉쇄하는 마법소녀의 힘은 잘 모르겠지만 어쩌면 이 상황 해결의 돌파구가 될지도 모른다. 이래저래 생각해보면 나쁘기만 한 상황은 아니었다. 역시 언제나 운은 이 키라 요시카게의 편이었다.

 

  “그건 좋지만…….”

  “응? 무슨 일이라도 있어, 코사쿠? 시밧?”

 

 어디서 나는 것인지 모르지만 어느정도 귀여운 효과음을 내며 뾰로롱 날아오는 마스코트를 보는 키라의 얼굴에 착잡함이 떠올랐다. 왜 하필 이 마스코트는 킬러퀸의 모습에서 따온걸까.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이기엔 너무 귀엽고, 그렇다고 존경으로 받아들이기엔 너무 앙증맞다. 신경 써서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질문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왜 하필 그런 모습인 거지?”

  “마스코트는 마법소녀의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소중한 친구니까. 시밧.”

  “아니, 내가 킬러퀸을 각… 만난 건 고등학교 졸업 즈음인데. 무엇보다 친구도 뭣도 아니고 그냥 스탠드지만.”

  “스탠드가 뭔지 모르겠지만 그런 세세한 부분은 신경 쓰지 않는 게 편해. 시밧.”

  “그, 그래….”

  “나도 깜짝 놀랐어. 코사쿠는 워낙에 말이 없어서 어린 시절 이야기도 안 해주고…. 또 마스코트 등록도 안 하고 혼자 싸웠으니까. 그래도 이제 같이 싸울 수 있어서 무척 기뻐! 시밧!”

 

 키라는 내심 가슴을 쓸어내렸다. 카와지리의 과묵한 성격이 고맙기는 처음이었다. 제대로 된 등록도 하지 않았으니 자신이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킬러퀸을 닮은 모습이 거슬리긴 했지만, 그 정도는 애교로 넘어가 주기로 했다.

 

  “나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그런데 왜 말끝마다 시밧을 붙이는 거지?”

  “당연히 마스코트니까! 마스코트에게 아이덴티티는 정말 중요한걸. 말버릇은 기본이야. 시밧.”

  “그런가…….”

 

 어처구니없는 말이라도 짧은 팔을 허리에 올리고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대로 납득하게 된다. 확실히 어떤 무엇이든 고객에게 조금이라도 이미지 어필을 하는 게 상품 판매량에도 도움이 되는 편이었다. 물론 그 ‘시밧’이라는 말버릇이 마법소녀의 마스코트에 어울리는 말버릇인지는 키라에게 자신이 없었지만, 이런 언밸런스한 귀여움도 은근히 수요가 있었으니 나쁘진 않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거의 10년 만인데, 코사쿠는 마법소녀에 대해 제대로 기억하고 있어? 시밧?”

  “아, 아아…. 사실 좀 곤란하던 참이긴 해…….”

 

 입으로는 곤란하다고 말하는 중이었으나 키라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진심으로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자신을 보는 마스코트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어색함 정도는 넘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일이 너무 쉽게 풀리는 것도 경계해야 하는 부분이었지만, 키라는 여기 오기까지 험난한 과정을 생각하고 노력이 보답 받는 순간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미안하지만… 마법소녀가 하는 일부터 다시 제대로 알려줄 수 있을까?”

  “물론이지! 마침 여러 가지로 마법소녀법 개정이 있기도 했으니까 내가 다시 제대로 알려줄게. 시밧.”

 

 법이 있는 건가. 마법소녀도 마냥 쉬운 일은 아니구나. 기묘한 익숙함과 갑작스레 다가오는 현실감을 생각하면 마법소녀는 직장인과 다를 바 없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키라는 조금은 카와지리를 동정하는 마음이 들었다.

 

  “마법소녀란 다른 사람의 꿈과 희망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어, 시밧.”

  “꿈과 희망…?”

  “그래, 꿈과 희망을 지킬 수만 있다면 뭐든 상관없어. 시밧.”

  “어쩐지 따로 제한은 없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그렇지! 공소시효를 피해 숨은 범죄자를 찾아서 혼내주는 것도 누군가의 꿈과 희망을 지켜준다면 마법소녀의 일이라고

  할 수 있어, 시밧.”

 

 어쩐지 너무 묘하게 구체적인 예시에 절로 인상이 찡그려진다. 그건 마법소녀가 아니라 지독한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부 아닌가. 개인적으로 죽어서도 하기 싫은 일이라고 키라는 생각했다.

 그 외에 마법소녀의 마음가짐, 노동 시간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다락방은 흡사 취업박람회와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 막 마법소녀의 세계에 발을 들인 신입에게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업계 종사자라는 시점에서 박람회라는 표현은 의외로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런 시답잖은 감상을 품으며 키라는 마스코트의 설명을 머릿속에 새겨두었다.

 

 대강의 설명이 끝나고 키라는 생각했다. 마법소녀라는건 세계라는 블랙기업이 직원을 쥐어짜 내는 불쌍한 직업군이 아닐까. 다른 사람의 꿈과 희망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갈아 넣는다니 키라에겐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카와지리 너는 직장에서도 그러더니 대체 얼마나 일에 찌든 사축이었던거냐. 이미 신분을 빼앗아 살면서 한심한 여자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다시 생각해봐도 불쌍하지만 역시나 한심하고 별 볼 일 없는 여자라는 생각이 든다.

 

 키라의 그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스코트는 어디선가 자신에게 맞는 사이즈의 작은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고 있었다. 키라는 그 광경을 미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외모만큼은 익숙한 마스코트에게서 익숙한 상사의 분위기를 느끼는 건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감각이었다.

 

  “그래도 다행이야~ 사실 마법소녀도 오래 하지 않으면 자격을 박탈당하는데 코사쿠는 아슬아슬했어. 시밧!”

  “뭐라고?!”

 자격 박탈이라니, 그건 조금 전 장황한 설명에서도 듣지 못한 말이었다. 키라는 무서운 기세로 마스코트를 낚아채 양손으로 꼭 쥐었다. 게엑, 아무리 마스코트라도 단말마만큼은 귀엽지 않았다.

  “혹시 그 자격을 포기하는 방법도 있나?”

  “그, 그건 알아서 뭐 하려고…? 시밧…?”

 손에 잡혀 삐질삐질 땀을 흘리는 모양이 갑작스러운 인력 펑크에 당황하는 상사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순간 같은 직장인으로서 동정심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애초에 키라가 곤란한 상사를 도와준 적은 극히 드물었고 이번에도 그런 일은 없을 예정이었다.

 

  “당연히 마법소녀의 자격을 포기하기 위해서 아니겠어?”

  “가, 갑자기?!”

  “10년 가까이 마법소녀를 하지 않은 시점에서 눈치챌 법도 하지 않나!”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그 정도는 장기 휴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걸…!”

 꽤나 당황한 모양인지 마스코트는 말버릇도 빼먹고 허둥대기 시작했다. 눈을 부릅뜨고 땀을 흘리며 당황하는 스탠드의 얼굴을 보자니 어쩐지 자신이 정말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허나 그런 작은 죄책감은 키라를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아니, 마법소녀를 그만두고 싶어. 나에겐 부양해야 할 ‘그녀’도 있어! 이런 일을 하고 있을 시간도 힘도 없다고!”

  “히, 힘들면! 육아휴직도 줄게! 그 정도 복지는 있으니까!”

  “무리다! 나는 마법소녀 같은 건 때려치우고 오늘 밤만큼은 편히 자고 싶어!”

 흡사 퇴사하려는 직장인과 그를 막으려는 사장과도 같은 치열한 접점이었다. 그 때문일까, 키라도 마스코트도 다락방을 올라오는 소리를 놓쳐 누군가의 접근을 허용해버리고 말았다.

 

  “누, 누구…?”

  “윽…!”

 여기서 들려선 안 되는 목소리에 순간 식은땀이 흘렀다. 무섭게 고개를 돌리자 어리둥절한 표정의 하야토와 눈이 마주쳤다. 마법봉을 찾고 마스코트와 이야기하는 사이에 하야토가 돌아올 시간이 된 모양이었다. 키라는 간만에 눈앞이 깜깜해지는 감각을 맛보았다.

 왠지 죠타로의 스탠드에게 엉망진창으로 맞았을 때가 떠오르는데. 머리 한구석에서 그런 태평한 생각이 떠올랐지만, 지금은 한가하게 현실 도피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안 그래도 거동이 수상한데 이런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있는 모습까지 보이면 대체 엄마로서의 위엄은 어떻게 되는가. 뭐, 사실은 전혀 상관없는 남남이지만 적어도 죠스케와 그 일당을 해치우기 전까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마스코트를 한번 노려본 키라는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를 냈다.

  “하야토, 그게 말이다…….”

  “…당신은 누군데 제 이름을 알고 있는 거에요?”

 

 

 키라가 내딛던 발을 멈춘 것과 하야토가 뒤로 물러선 것은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혹시 캠프를 다녀오다 어디 머리를 다쳤나? 이상한 옷을 입었어도 얼굴과 헤어스타일은 전혀 바뀌지 않았기에 누가 봐도 현재 자신은 카와지리 코사쿠였다. 물론 자신도 부모가 이런 옷을 입고 있다면 모른 체를 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지만 표정을 살펴보아도 하야토는 진심으로 모르는 타인을 경계하는 기색이었다.

 키라는 반신반의하며 아직 자신의 손에 잡혀있는 마스코트 쪽으로 시선을 내렸다. 시선이 마주치자 마스코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고 있다는 듯 방긋 웃었다.

 

  “걱정하지 마, 마법소녀로 변신했을 땐 아무도 못 알아보니까! 시밧!”

  “그런 건 좀 일찍 말해!”

  “억울해! 말할 틈을 줬어야지!”

  “저기…….”

 하야토는 복잡한 표정으로 무언가 속삭이는 두 명을 바라보았다. 요새 행동이 조금 이상해진 엄마가 다락방으로 갔다는 말을 듣고 무슨 일인가 싶어 올라와 봤더니 화려한 옷을 입은 여성과 고양이처럼 생긴 정체불명의 생명체가 싸우고 있었다. 게다가 처음 보는 저 여성은 놀라면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게 아무래도 자기를 아는 것 같았다. 얼굴을 보고 있다 보면 익숙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할 즈음 여성과 다시 눈이 마주쳤다.

 

  “나는… 엄마가 부탁해서 와봤는데 잘 지내는 것 같아 다행이구나.”

  “엄마요?”

  “어, 그래……. 카와지리 코사쿠의 직장동료… 랄까, 사실은 얼굴만 몇 번 본 거래처 직원이라 말도 섞어본 적은

  없었지만……. 아무튼 널 걱정해서 내게 부탁을 했거든.”

  “그런 옷을 입고 직장동료라니, 제 엄마는 평범한 직장인인데요.”

 

 저건 대체 누굴 닮은 성격이야. 기껏 머리를 굴려 변명을 해봐도 하야토의 대답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역시 들켰으니 죽이는  수밖에 없나? 하지만 지금은 마법소녀로 변신한 상태여서 스탠드를 낼 수 없는 상태였다. 변신을 풀면 되는 일이지만 풀고 정체를 들켰을 때의 어색함은 상상도 하고 싶지 않은 종류였다. 무엇보다 죠스케 일행에게 쫓기고 있는 현재 최대한 눈에 띄는 일은 자제하고 싶다. 키라는 최대한 조용히 이 상황을 모면할 방법을 찾고 싶었다.

 

  “하야토는 마법소녀가 처음인 거야, 시밧?”

  “마법소녀…?

 

 언제 자신의 손에서 빠져 나온 것인지 쪼르르 날아간 마스코트가 하야토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가 싶어 바라보면 키라를 향해 윙크해온다. 자신에게 맡기라는 뜻 같지만, 솔직히 믿음직하기보단 그저 귀여워 보인다. 불안한 키라를 두고 마스코트는 계속 말을 이었다.

 

  “마법소녀는 꿈과 희망을 지켜주는 존재니까, 시밧. 코사쿠는 하야토의 꿈과 희망을 지켜주고 싶어서 우릴 부른 거야. 시밧.”

  “마법소녀라니… 갑자기 그런 소리를 해도 믿기 어려운데.”

  “이렇게 귀여운 마스코트가 말하고 움직이는 것도 똑같지 않아? 시밧?”

  “…그건 그렇지만.”

 

 확실히 귀여운 외모가 어린이들에게 잘 먹히는 것인지, 하야토와 마스코트는 대화가 통하는 듯했다. 작아진 스탠드와 하야토라는 생각도 못한 조합이었지만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비협조적이긴 해도 하야토를 이용하는 것도 괜찮을지도 모른다. 훈훈한 광경을 보면서도 키라의 생각은 마법소녀답지 않게 난폭하기 그지없었다.

 

  “하야토의 얼굴도 봤으니 우린 이제 돌아가도록 할게, 시밧. 갑자기 사라질 거니까 잘 봐둬야 해. 시밧.”

 하야토의 경계심이 얼추 누그러지자 마스코트는 하야토의 주변을 한 바퀴 돌고는 다시 키라의 곁으로 돌아왔다. 마스코트의 발언에 하야토뿐만 아니라 키라도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어떻게 하라는 거야? 키라의 시선에도 마스코트는 태평하게 웃으면서 허리춤에 메고 있던 마법봉을 가리켰다.

  “아까 말했지? 마법은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지는 힘이니까. 시밧. 대충 주문 같은 걸 외우면서 원하는 장소로 가고 싶다고 바라면 이루어질 거야. 시밧.”

  “대충하지 말고 제대로 된 매뉴얼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건 인수인계가… 크흠, 마법소녀 개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니까! 시밧.”

  “…….”

 마스코트를 바라보는 키라의 눈빛은 신뢰할 수 없는 기업에 대해 보내는 불신의 눈빛과도 비슷했다. 마스코트의 귀여운 얼굴에서 땀이 한 방울 흘렀다. 안 그래도 사납게 생긴 카와지리의 얼굴로 싸늘한 표정을 지으면 누구라도 겁먹을 만큼 무서웠지만 얼굴을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은 키라에겐 자각이 없었다.

  “이, 일단 이 자리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하니까! 그렇지? 시밧?”

  “그건 그렇지…….”

 버티지 못한 마스코트의 재촉에 키라가 마법봉을 꺼내 들었다. 진짜 하려고? 키라를 바라보는 하야토의 표정은 혼란 그 자체였다. 지켜보는 하야토뿐만 아니라 마법봉을 든 키라 본인도 내심 혼란스러웠다. 주문 같은걸 외우라니, 말은 쉽지만 갑자기 시켜도 곤란하기만 하다.

 

 그래, 일단 어디로 갈지부터 생각하자. 집 근처 산으로 피하기엔 주말에 등산객이 많을 수도 있었고 이 복장은 가만히 있어도 너무 눈에 띈다. 일단 하야토가 왔다는 건 점심시간이라는 뜻이니 한산한 동네로 움직이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동네 안으로 범위를 좁힌 키라는 집 뒤편에 평소에도 인적이 드문 골목길이 있다는 걸 생각해냈다. 퇴근길에 산책 겸 주변을 살펴보길 잘한 것 같다.

 

  “장소를 정한 것 같구나! 지금이야, 주문을 외우는 거야 코사쿠! 시밧.”

 

 그러니까 그 주문을 어떻게 외우라는 거야! 키라는 무작정 마법봉을 들어 올렸다. 마법소녀 작품을 전혀 보지 못한 키라가 초등학생이 보기에 적당히 있어 보이는 주문을 생각해내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이걸 외치는 수밖에 없나? 늘 외치던 단어였는데도 막상 이런 상황이 되니 수치스러운 지경이었다. 이쪽을 바라보는 하야토의 시선도 견디기 어렵다. 이쪽을 보지 마라! 속으로 시어 하트 어택이 자주 하는 말과 정반대의 말을 외치며 수치를 이겨낸 키라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키, 킬러퀸--!”

 

 키라의 외침에 부응하듯 마법봉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 직후, 폭탄이 터지듯 강렬한 빛과 폭발음에 하야토는 앞을 보지 못하고 팔을 들어 올리고 고개를 숙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요란한 소리와 달리 아무런 충격도 없어 슬그머니 고개를 들자 이상한 이인조는 마법처럼 사라졌고, 짐이 정리되어 깨끗해진 다락방엔 고요함만이 내려앉았다.

 

  “마법소녀…? 진짜로 마법소녀인거야……?”

 

 다락방엔 하야토의 반신반의한 목소리만이 맴돌았다.

 

───

 정신을 차리면 어두운 다락방이 아닌 집 뒤편 골목길이었다. 정말로 순간이동에 성공했다. 키라는 두 팔을 벌리고 이로써 나는 자유를 얻을 수 있다! 라고 외칠 만큼 기뻤지만, 어쩐지 그 행동을 하면 이 기쁨도 금방 사라질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 행동으로 나타내는 건 그만두기로 했다. 절대 눈앞에 날아다니는 마스코트와 눈이 마주쳐서 그런 건 아니었다.

  “역시 코사쿠는 마법소녀에 재능이 있구나! 한번에 이렇게 완벽하게 마법을 성공할 줄은 몰랐어. 시밧.”

  “그야 나는 키…카와지리 코사쿠니까. 이 정도는 당연하지.”

  “응,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구나! 아까 하야토에게 말할 때에도 굉장한 리얼리티였어. 진짜 다른 사람인 줄 알았다니까. 시밧.”

  “그, 그렇다면 다행이야…….”

 사실 다른 사람 같은 게 아니라 정말 다른 사람이 맞지만. 슬쩍 시선을 피한 키라는 주제를 바꾸고자 헛기침을 한번 하고 말을 꺼냈다.

  “그건 그렇고 마법소녀로 변신했을 땐 아무도 못 알아본다니, 여기에 대해 자세히 말해주지 않겠어?”

  “아아, 그거 말이구나. 요새 시대가 바뀌다 보니 아무래도 마법소녀로 활동하기 어려워져서 최근 인식 방해 마법이 강화되었거든. 시밧.”

  “인식 방해 마법?”

  “변신하면 자동으로 주변 사람들은 해당 마법소녀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게 되는 마법이야. 눈앞에서 대놓고

  변신하는 게 아닌 이상 바로 옆에 있었어도 모를 정도니까 정체를 숨기기엔 정말 안성맞춤이지! 그러니까 안심해도 돼!

  시밧.”

 

 마지막 말에 키라의 눈빛이 흔들렸다. 정체를 숨기는데 최적인 마법. 그건 지금 자신이 간절히 바라던 게 아니었던가. 이 타이밍에 이런 힘을 얻게 된다니 운은 역시 자신의 편이다. 물론 이런 꼴을 하는 건 정말 마음에 안 들지만, 이런 부끄러운 옷을 입는 정도로 평온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면 키라는 기꺼이 할 수 있는 각오가 되어있었다.

 

  “그래도 이런 건 잘 만들었구나.”

  “코사쿠 정도 나이가 되면 주변 사람으로부터 정체를 들키는 건 사회적 죽음과 가까우니까. 시밧. 그럼 누가 마법소녀를 하고 싶어 하겠어? 이쪽도 늘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니 이정도 복지는 해줘야지. 시밧.”

  “귀여운 모습으로 그런 말은 하지 않아 줬으면 해…….”

 키라의 분위기가 누그러진 걸 깨달은 마스코트가 키라의 주변을 둥둥 떠다니기 시작했다. 코사쿠, 마법소녀 계속해줄 거지? 과하게 눈을 빛내며 애교를 부려오는 마스코트의 모습은 애처로울 정도였다. 부담감에 약하게 마스코트를 밀어낸 키라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알았으니까 진정해. …할게, 마법소녀.”

  “정말 고마워! 앞으로도 잘 부탁해, 코사쿠! 시밧!”

 어려운 계약을 성사시킨 영업사원처럼 해맑게 웃은 마스코트가 작고 앙증맞은 팔 한쪽을 내밀어 왔다. 악수인 걸까. 말랑한 팔을 살며시 쥐어보니 열심히 흔드는 게 악수를 요청하는 게 맞았던 것 같다. 어이없는 걸 넘어서 꽤 귀여워 보이는 동작에 키라가 한숨 같은 웃음을 흘렸다.

 마법은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어쩌면 조만간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얻을지 모른다.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며 신이 난 마스코트를 두고 위를 올려다보니 파란 하늘이 보였다. 모리오초의 여름은 날씨가 좋다. 오늘 밤은 그럭저럭 숙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마법소녀 카와지리 코사쿠의 제2의 마법소녀 생활이 시작되었다.

​마법소녀는 조용히 살고 싶다

w. 사축 (@sachuk_kc)

~카와지리 코사쿠의 새로운 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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